소태산 찬 {감응편} 연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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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04-29 16:4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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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■감응편■
다. 따라서 소태산찬 {감응편}은 민간도교의 {태상감응편} 유행본 중의 하나이다.
이 {원불교교사}와 유사한 저서를 전하는 문헌으로는 1940년 1월 간행된 {회보}62호에 실린 원산 서대원(1910-1945)의 [종화록(일)]을 들 수 있다아
원본 ■태상감응편■
라고 하여 그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아 소태산 친저의 법의대전은 그 서문 첫절과 11구의 시구가 {대종경} 展望(전망) 품 2장에 전하는 바이며, 회성곡은 범산 이공전의 {대종경선외록} [대종사가사편]에 紹介되어 있으나,백일소와 심적편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아
소태산 찬 {감응편} 연구
2. ■소태산 법문■
순서
Ⅱ. ■감응편■의 체재와
{원불교교사}에서는, [원기 2년(1917.정사) 이래로 대종사 종종 김성섭에게 붓을 잡으라 하시고, 친히 수 많은 문자와 시가 등을 읊어 내어 기록케 하시고, 편집하여 [법의대전]이라 이름하시었다. 한국의 경우 성립도교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가 유입되어 흥행하였다.…]
설명
소태산 감응편 태상감응평 / (사상)
흔히 도교를 구분할 때, 교단을 이루고 전승되는 종교결사체로서 성립도교(교단도교), 국가의 관공서나 궁중에서 유행하는 형태의 궁중.관방도교, 그리고 재초의례를 중시하는 과의도교, 고도의 수련theory 체계를 갖추고 탈속하여 불로장생의 신선을 목적으로 한 수련도교, 사회 저층민을 대상으로 유포되는 소박한 신앙형태의 민간도교 등으로 나뉜다.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과의와 재초 중심의 도교가 과의도교, 궁중.관방도교였으며, 김시습으로부터 본격화된 조선시대 단학파들이 수련도교를 형성하며, {태상감응편}.[공과격]과 함께 조선후기에 유행된 민중신앙이 민간도교이다. 따라서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{태상감응편}이 원불교 초기교단에도 상당 부분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.
Ⅰ. 소태산의 초기 찬술문건
Ⅲ. 소태산 ■감응편■의 내용구조와 성격
소태산 감응편 태상감응평
소태산 감응편 태상감응평 / (사상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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Ⅳ. ■태상감응편■의 구체적인 선악 결산서 - 공과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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Ⅱ. {감응편}의 체재와 원본 {태상감응편}
[종화록이라 함은 즉 대종사의 시화록이라는 약칭이다 ... 당시의 친저 문자로는 백일소, 심적편, 법의대전, 감응편, 회성곡 등 기타 수다한 책자가 있엇으나 이는 다 음부시대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라 하야 전부 걷우어 친히 부화하섯다하는 바 하행 약간의 여적이 있어 좌에 紹介하기로 한다. 그 한 예로 [화피초목 뇌급만방]이라는 구절이 민중도교 전적인 {태상감응편}으로 부터의 원용인데 소태산이 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다.]라고 하여 소태산의 저서에 법의대전외에도 백일소, 심적편, 회성곡, 감응편 등이 더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아
소태산 친저로 알려진 감응편은 소태산이 당시 직접 불살라서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{원불교교사}는 전한다. 그런데 근년에 발굴되어 소태산의 부인인 양하운 대사모가 비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. 그동안 구전에 의하여 소태산이 {감응편}을 부인인 십타원 양하운(1890-1973)에게 전해주었다고 한 바도 있으므로 {감응편}은 앞의 [종화록]이나 {원불교교사}에 언급된 소태산 찬술의 {감응편}으로 보인다. … 이 밖에도 백일소.심적편.감응편 등의 저술과, 봉래산에서 지으신 회성곡이 있었으나, 그도 다 불사르게 하심으로써 후세에 남지 못하였다. 그렇다면 소태산이 교강제정을 전후로 친히 불살라 전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초기교단의 소태산 친저의 여러 문헌들이 상당부분 현재까지 전해지는 셈이다.


